철들지말자

십년의 약속, 대망의 모발이식 수술 -3- 본문

다음 생은 없으니까

십년의 약속, 대망의 모발이식 수술 -3-

철들지말자 2016. 6. 4. 15:53

드디어 수술 당일이 되었고, 생각보다 무덤덤한 심정으로 모제림 병원까지 운전해서 갔다.

병원 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선 순간부터 실감이 났고, 수술 전 체크사항을 다시 점검했다.


머리가 쓸리지 않도록 쉽게 상체가 오픈될 수 있는 셔츠 착용!

1주일 전부터 멀티비타민은 복용 중지를 했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주변 지인들에게는 1주일 연락 두절 시 경찰 신고와 수목장으로 진행해달라며 부탁해뒀다.


4F에 도착하여 접수 확인 후, 어여쁜 누나들께서 수술 시작 전에 작성해달라며, 건강 신상 카드와 함께 마케팅 이용 동의서 사인 요구를 했다.

지난번 상담 시 마케팅 이용 동의가 가격 할인의 조건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고민했다.

솔직히 그렇게 환자가 많으면서 뭘 내 것을 이용한다는 것인지.. 신경에 매우 거슬림.. 하지만 착한 호갱답게 동의서에 사인.





작성을 마치면, 이제 곧 수술이 시작된다며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라며 탈의실에 안내해준다.

탈의실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며 온갖 잡념에 빠졌다.


'거울에 비친 내 진짜 오리지날 머리..안녕...미안..대충 살 걸 그랬나? 미안 여기까지 왔어..'

기념 셀카 촬영에 친구들에게 카톡 호들갑..머리 만약에 나면 무슨 모양으로 나지? 근데 눈썹 잘됐나? 등등 (이미 수술은 뒷전)

바깥에서 간호사 누나의 빡친 인기척에 놀라 서둘러 짐 정리를 하고 수술실로 향하였다... 하 ㅠ ㅠ





수술실에는 수술을 진행하실 '슬릿팀' 이라는 간호사 2분이 있으셨고,

고문 영화에 나올 법한 무서운 느낌의 수술 도구, 의자, 침대 등이 평화롭게 흘러 나오는 라디오 방송과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나 "잘 부탁드립니다!!!" (이랏샤이마세!!!!! 느낌으로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

슬릿팀 누님들 "아 네.." (흑..ㅠ ㅠ 감동해주세요..제게 모든 능력을 쏟아주세요...시큰둥 반응 ㄴㄴ)


원장님이 등장하셨고, 수술 들어가기 전 환자와 디자인이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하셨다.

원장님은 내 머릿속 미키가 제거되어 촘촘히 채워진 그림을 그려주셨고, 난 생각보다 좁은 면적에 약간은 실망..

'분명 상담 때는 이마 라인도 더 내렸었고 면적이 넓었던것 같은데..'

같은 1200 모낭이니 면적이 넓으면 밀도가 적을 것이고, 면적이 좁으면 촘촘할 것이고

원장님이 베테랑이실 테니 믿고 그려주신 디자인에 찬성하였다.



디자인 선정 이후에는 뒷머리에서 모낭을 채취하기 쉽도록 이발을 해야 했다.

원래는 전체 삭발을 해야 수술이 쉽지만, 난 부분 삭발을 택했다. 

어엿하게 직장 다니는 사람이므로 전체 삭발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됐기 때문이다.


삭발-부분 삭발-노 삭발 3가지 선택사항별로 50~100 만원씩 차이가 난다.

아니 뭔 이발 조금 하는 것에 가격이 저렇게 차이가 나지? 쉽사리 이해가 안 간다만..

수술진행 시 머리카락의 방해 여부에 따라 작업성이나 작업시간이 크게 좌우되어 그런듯하다.

슬릿팀 누나들이 이발기로 부분부분 머리를 밀기 시작했고, 당연히 뚜껑처럼 가릴 수 있는 뒷머리도 남겨주셨다. 

(바람 불면 커튼 오픈되어 ^^ 탈밍아웃 각오해야 함)





부분 삭발을 마치고 뒤통수에서 모낭 채취를 하는 본격적인 수술을 위해, 

얼굴을 등받이에 묻은 채로 의자에 앉아야 했다.

원장님 "따끔할 겁니다" 라는 멘트와 함께 수술 시작.

생각보다 아주 아프지는 않지만, 그 주사바늘을 거의 4~50방을 맞은듯 하다. 

치과 마취주사처럼 한두 방 맞으면 전체적으로 마취 되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면적을 넓혀가며 맞아야 했다.


마취 주사 → 마취되면 원장님이 모낭이 척출되도록 펀칭?→ 펀칭 된 곳에서 슬릿팀 누나들이 모낭 채취 → 고통 느끼는 부위는 다시 마취

이러한 패턴으로 모낭 채취 작업이 이루어졌다. 


펀칭 작업은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다. 이름만 들어도 소름 돋고 기절할 것 같아서..

모낭 채취는 뭐..핀셋 같은 것으로 뽑아내는 고통?

채취 영역은 이발기로 밀어버린 모든 부위인 줄 착각했으나, 

그 부위를 전체 다 뽑으면 정말 땜빵처럼 남는 것이니, 듬성듬성 채취한다고 한다.




모낭 채취는 고통이 크지는 않지만, 의자에 앉는 자세도 너무 불편하고 바들바들 떨면서 극도로 몸에 힘이 들어가고 지쳐만 갔다.

원장님 "너무 힘주시면 채취를 많이 못 해요 ㅠ ㅠ 많이 무서워 하시나 봐요"

아니 이게 너무 쫄아서 마음대로 몸이 안 풀어졌다. 

작업이 상상이 되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아버려 경직된 느낌? ㅠ_ㅠ

그래도 원장님이 고마운 게 옆에서 정말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배려해주는 게 느껴졌다.

하..내 모발의 아버지 하...(앞으로 모버지라 부르겠음)


모버지님의 마취주사+펀칭 작업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슬릿팀 누님들의 채취 작업이 집중됐다. (상담+점심식사 하시러 빠지시는 듯)

적막한 가운데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해도 슬릿팀 누나들은 대꾸가 별로 없으셨다.


슬릿팀 "저희가 숫자를 세면서 작업 중이에요..."

나 "아..죄송합니다.."

내가 지금 프로페셔널한 분들한테 작업 방해를 하다니..나란 새끼 노답새끼.무슨 짓한거지..어여 작업들 하세요.. ㅠㅠㅠㅠㅠㅠ



그렇게 채취 작업이 길어지며 모두가 지쳐가는 와중에,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는데 박명수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니 근데 무슨 라디오 코너가 개병맛 같은게 있는지..청취자한테 전화해서 방구 소리를 내보라는 저질 미션이었는데

왠 중년 아주머니가 팔에다 대고 "이건 아이 방구입니다, 이건 성인 방구입니다" 하면서 뿌뿌뿡뿍뿡 소리를 내는데

슬릿팀 누나들 피식 피식하면서 수술도구 파르르 떨리는게 내 후두부에서 다 느껴졌음...

(집중해 집중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박명수 ㅆㅂ 라디오 꺼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채취 작업이 완료되었고, 오후 수술을 위해 잠시 휴식실로 안내하겠다며 일어섰는데

베개와 바닥에 핏물 범벅...............(설마 내꺼....?).................

정신 혼미해지고 이 끔찍한 광경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휴식실에 도착하니 호박죽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그 앞에 있는 거울 속에는

반쯤 영혼이 나간 내 모습이 있었다.


-오전 수술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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